나이를 예순 가까이 먹고 나서 성격을 고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유튜브에서
저와 똑같은 성격을 가진 두 명의 유명 연예인을 봤습니다. 두 사람 모두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성격인데,
“쉴 때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혼자 있을 때 마음이
가장 편합니다”이렇게 말하더군요. 유명 MC로 누구보다 사람을 만나면
밝은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데 깜짝 놀랬는데 저도 그렇습니다. 혼자 있을 때 마음이 가장 안정됩니다.
혼자있을때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오히려 에너지가 생기고 한번 집에 들어가면 다시
나가고 싶지 않은 성격이니까요. 이런 성격은 리더보다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자리에 더 어울립니다. 그런데 제 인생은 늘 앞장서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자라, 중학교를 졸업할 때 “아버지, 인문계로 갈까요,
공고로 갈까요?” 물었더니 아버지는 “네가 알아서 해라”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많은 결정을 혼자 내려야 했습니다. 결정장애가 있는 성격인데, 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위치에 있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군대에서는 연대 교육담당으로, 선교단체에서는 주임간사로, 그리고 목회에서는 부목사 경험
없이 담임목사로 늘 결정하면 앞장서야 했습니다. 잘못된 결정 하나가 문제를 만들까봐 두려웠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한 시간이 많았습니다. 올해만도 음악회 기도를 네 번이나 맡았습니다. 누가 부탁하면 거절을 잘 못합니다. 기도문을 준비하려면 합창단 자료를 찾고, 행사 취지를 읽고, 문장을 다듬어야 합니다. 준비하면서는 늘 후회가 됩니다. “내가 왜 한다고 했을까.” 영어로 기도를 부탁받을 때는
거의 미치겠지만, 그래도 거절을 못합니다. 이건 아주 오래된 고질병이지요. 12월에 꽤 큰 갈라쇼 기도를 맡은 것에 대해서 지금도 물리고 싶은 심정이라 마음에 부담이 커갑니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제 성격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기존의 성격이 감춰지고, 단점이 좋은 쪽으로 강화되었습니다. 그건 제가 제 단점을 하나님께 계속 아뢰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하나님께 맡길 때 조금씩 다듬어집니다. 그것을 우리는 ‘성화’라고 부릅니다. 성격은 변명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듬으시는 재료입니다. 내 성격을 이유로 상처를 주면 공동체는 깨어집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저 사람은 성격이 그래서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넓어집니다. 자신의 성격을 알고, 배우자의 성격을 이해하며, 그 안에서 조금씩 조심하고
고쳐 가는 것— 그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 아닐까요? 우리 교회 안에는 이런 부분을 도와줄 박사학위까지 소지한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를 바꾸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기도합니다. “주님,
제 성격까지도 주님 손에 맡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