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가 되면 예수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일찍 준비했다고 여겼습니다. 2, 3월 안식월을 보내며 한국을 나갈 때, 제 마음속에
분명한 생각 하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30년 전 신학을 함께 공부했던 동기 목사들 가운데, 특별히
농촌 목회에 마음을 두었던 친구들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장신대는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어려워 장신대 입시 고시원이 여러 곳에서 운영될 때이고, 한국교회의 중흥기라 교회는
골라서 갈 수 있을 만큼 전도사에 대한 수요가 많았기에 많은 졸업생들이 수도권에 있는 교회를 갔고 한 번 지방으로 내려가면 다시는 수도권으로 올라오기
어렵다는 말도 공공연했습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가 아니라 “부름받아 나선 이 몸 골라골라 가오리다”라는 자조 섞인 농담도 오갔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농촌으로 내려갈 거야”라고 말하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마치 심훈의 상록수처럼, 그렇게 꿈을 꾸던 친구들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농촌으로 떠났습니다. 그들을 떠올릴 때마다 제 마음에는 늘 빚진 마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 교단에는 안식년을 갖는 목회자를 돕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잘 알지도 못했던 그 제도를, 연금국의 이동조 총무님이 시간도 되지 않는 것을 천사처럼 도와주셔서 한국에 들어갈 때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교회 역시 안식년이라고 해서 사례비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묵상하다 그건 제가 쓸 돈이
아니라 생각이 들어 결심했습니다. “이번에 받는 것은, 그 친구들에게 진 빚을 갚는 데 쓰자.” 한국에서 만나는 어려운 목회자들에게 백만 원씩을 전했습니다. 개척교회를 하는 목회자에게는, 어렵게 목회하는 동기들에겐 조금 더 보탰고, 손양원 기념관에
드렸고 신학을 공부하는 조카에게는 한 학기 등록금을 건넸습니다. 저를 도와주려고 애쓰고 노력한 이동조 총무님은 이 사실을 알게 된후 “집사람에게 허락은 받고 한 일이냐”고 핀잔을 주셨지만, 그 목소리엔 따뜻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그렇게 하면 마음의 빚이 조금은 가벼워질 줄 알았습니다. 마음속으로 은근히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 인철이 참 멋지지요? 크리스마스 선물 마음에
드세요?”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12월, 예수님께 드릴 선물과는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그저 제 마음의 빚을 덜고 싶었던 행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작년에 보내지 못했던 크리스마스 카드를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대략
150여 통. 한 분 한 분을 떠올리며 카드를 적어 내려가는데,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누군가는 미국 목회가 힘들다고 말하지만, 저는 거저 먹은 목회였습니다. 이렇게 편하게 목회해도 되나 싶을 만큼, 교우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 드릴 선물… 예수님께 드릴 선물은 결국 폼이 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받은 선물이 너무도 커서, 자랑할 건덕지가 없습니다. 자랑하고 싶었는데, 올해는 자랑할 것이 없어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고백할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올해 크리스마스는 유난히 더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