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짧은
문자가 하나 와 있었습니다. “목사님, 저
미국이에요.” 그 문자를 보자마자 마음이 뭉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H자매! 우리 가족에게, 그리고
제 인생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1996년, 경기도 마석 천마산 기도원에서 열린 집회에 저녁 강사로 갔을 때였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잠시 쉬는 시간에 한 자매가 다가왔습니다. “전도사님, 저희
노래선교단을 지도해 주실 수 있을까요?” 연세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던 자매였습니다. 노래선교단의 반주자였던 그 자매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고, 저는 그 눈빛 앞에서 별다른 계산도 없이 “알겠다”고 약속해 버렸습니다. 자매의 피아노는 다른 세계였습니다. 찬양 인도자의 호흡을 읽어내듯 반주했고,
곡 이름만 말해도 이미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손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연주한다’기보다 ‘함께 예배한다’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자매는 어린 예석이를 위해 노래를 만들어 주었고,
자매의 어머니는 집사람이 필리핀 선교를 갈 때 갓 태어난 예림이를 열흘이나 맡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오기 전까지, 우리는
가족 같았고 형제 같았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는 신혼여행 중에도 우리 집에 들를 만큼 가까운 사이였고, 이후 자매는 남편을 따라 인도 등지에서 오랜 외국 생활을 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온누리교회 성가대를 지휘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 박신화 선생님이 인도하시는 한세 글로벌봉사단의 미국 순회 연주에
동행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함께 온 솔리스트 아람이는
2008년 오렌지연합교회를 방문했던 형제였습니다. 아람이의 얼굴이 그대로여서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는데,
이제는 마흔을 훌쩍 넘었다고 합니다. 문득 H자매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어떻게 되지?” “목사님, 저
50 넘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가 함께 울고 웃었던 수많은 장면들이 조용히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중국과 홍콩에서의 사역,
이대 다락방에서 늦도록 이어지던 이야기들…. 그때 우리는 모두 교역자였고 학생이었기에 서로의 나이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일정 때문에 만남은 아주 짧았지만,
헤어진 뒤 돌아오는 길에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그날 밤, 쉽게
잠들 수 없었습니다. 요즘 저는 “우리는 모두 이야기로 남는다”는 말을 자주 떠올립니다. 은퇴를 앞두고 교인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다 보면,
그들의 삶이 이야기처럼 제 안에서 흘러나옵니다. 목회란, 결국 사람의
시간을 함께 건너는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설교보다, 사역보다,
함께 보낸 그 시간들이 더 오래 남습니다. 이제 저 또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한 장의 이야기로 남게 되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며,
그날 밤 오래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