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저희 교회에서 정신과 의사이신 여천기 집사님의
은퇴식 겸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여 집사님을 뵈는 순간, 2001년
여름의 한 주가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그 해 여름, 제가 섬기던 교회에 유학생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전날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러 갔을 때, 그녀의 손목에는 한두 번이 아닌 여러 번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미국에 오기 전에도 여러 차례 시도를 했다고 했습니다. 23살의 앳된 나이에 ‘우울’이라는
말이 어떻게 이토록 무겁게 덮일 수 있는지, 그저 안타까웠습니다. 한국에서는 약을 복용하며 괜찮았는데, 유학 와서는 약이 끊겨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교회 분들의
소개로 그녀를 여천기 선생님의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선생님은 조용히 그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잠깐 밖에 나가 있으라 하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약을 처방해 먹이겠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을 혼자 두시면 안 됩니다.” “얼마 동안요?” 제가 묻자, “최소한 일주일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 학생을 맡아줄 사람이 쉽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혼자 사시는 전도사님께 어렵게 부탁드렸지만 “목사님,
너무 무서워요” 하셨습니다. 결국 저는 집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생님도 아마 제가 그 학생을 집에 데려가게 될 줄을 예감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 자매는 저희 집에 머물렀습니다. 아내와 그 자매, 그리고
두 아이는 방에서 잠들었고 저는 거실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그녀가 또다시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을까, 더 무서운 것은 혹시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밤새 저를 지배했습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에는 학교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기를 반복한 일주일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이후 그 자매는 부모님과 연락이 닿아 결국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일주일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돌아가서도 교회를 출석하며 연락을 주고받았고, 결혼 소식도 전해 들었습니다.
이후 제 이메일 주소가 바뀌면서 더는 연락이 닿지 않았지만, 저는 늘 그 친구가
잘 살고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여 집사님을 뵈었을 때, 그때의 기억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밀려왔습니다. 그 날을
떠올리며 저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 느꼈습니다. “내가 외로울 때 네가 나를 집으로 데려갔구나.
내가 죽고 싶을 때 네가 친구가 되었구나.” 가슴이 울컥해졌습니다. 그 친구가 지금도 살아서 하나님 은혜 안에서 평안히 살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