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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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안개와 같은 인생2025-06-02 06:20
작성자 Level 10

1997, 이화여대 다락방 전도협회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그곳에서 대학원에 다니시던, 조금은 나이가 있으신 정성희 집사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집사님은 연로하신 어머님을 모시며, 사춘기에 접어든 두 아들을 홀로 키우시는 열혈 엄마셨습니다. 공부도 병행하시며 늘 밝고 당당하셨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사님은 선교단체에서 어린 친구들을 돌보는 간사로 섬기시게 되었습니다. 엄마처럼 사랑으로 품으셨고, 때때로 아들들에 대한 고민도 나누셨습니다. 저도 두 아들을 종종 만나 밥을 사주거나, 때로는 청소년기에 방황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형처럼 다가가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특히 큰아들 유진이(당시 고3)는 방황이 심했습니다. 어느 날, 집사님이 조심스럽게 부탁하셨습니다. “한 번만 만나 주세요.” 학교보다는 밖에서 방황하고 술을 마신다는 말에 공원에서 캔맥주를 사들고 가, 다 마시면 한잔따라주며 ‘왜 그렇게 엄마 속을 썩이느냐’ 나무랬더니 유진이는, 아버지도, 형도 없이 마음 둘 곳 없던 외로운 아이가 3~4시간 동안 자신 안에 있는 깊은 상처와 고통을 쏟아냈습니다.

그날 이후, 두 형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자연스레 제가 챙기게 되었고, 그 인연은 제 목사안수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2023 5 28일 칼럼에도 썼듯, 목사 안수를 받던 날 집사님은 저에게 아주 고급스러운 넥타이를 선물해 주었고 지난 25년간 저는 그 넥타이를 소중히 간직해왔습니다.

두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라 미국에 와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는 모두 전문직에 종사하며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집사님은 더 이상 자녀 문제로 고민하지 않으셔도 되는 평안의 시간을 누리셨고, 이후 신학을 공부하시고 목사가 되셨습니다.

그런 정성희 목사님의 큰아들 유진이가 지난 주일,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47세입니다”라고 대답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너 술 따라준 거 기억하냐?”고 물었더니, “어떻게 잊겠어요”라며 웃으며 목사님의 근황을 알려주었는데 어깨 수술을 하시고 재활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사실 3월에 미국에 오셔서 교회를 방문하시겠다고 하셨는데, 제가 한국에 나가 있는 기간이라 뵙지 못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시면 꼭 뵙자고 했는데, 저도 너무 바빠 “나중에, 나중에” 하며 미뤘고, 결국 10년 만에 뵐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리고 유진이를 만난 바로 다음 날, 믿을 수 없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던 유진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전했습니다. “목사님… 어젯밤 주무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향년 71.

워낙 고우신 분이라 누구나 50대로 보이셨던 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너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야고보서 4 14)

정말 우리는 안개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언제 한번 뵈어야지’ 했던 마음이, ‘그날은 꼭 오겠지’ 했던 약속이, 한순간 사라지는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그 안개 너머에는 영원한 빛과 생명 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사랑을 듬뿍 주셨던 누나 같은 정성희 목사님, 그 따뜻한 미소와 사랑, 다시 천국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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