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한일서
4:10) 이 말씀과 찬송가 282장 ‘큰 죄에 빠진 날 위해’를 마음에 품고 만들어진 복음 영화 ‘너를 위해’는 가슴 먹먹한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부모님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형 한동민은 끝까지 신실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동생 한동진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방탕한 삶으로 흘러갔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형은 의롭고 동생은 악했습니다. 형은 살아야 하고, 동생은 죽어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높고, 그 섭리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형은 결국 동생을 대신해 순교자의 길을 걷습니다.
의로운 자가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죽습니다. 신실한 자가 배신한 자를 대신하여 형장으로 걸어갑니다.
한편, 우리의 마음속에는 중국 문화혁명 당시의 한 실화가 겹쳐 떠오릅니다. 홍위병들이 한 그리스도인 형제를 처형하기 위해 들이닥쳤을 때, 형은 동생을 살리기 위해 조용히 앞으로 나서며 말했습니다. “내가 동생입니다.”
그는 그 한마디로 동생의 생명을 대신 품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내가 동생입니다." 이 한마디 속에 십자가의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다시 영화의 장면으로 돌아가면, 형은 동생을 향해 말합니다. “내가 너를
대신하겠다. 내가 너의 자리에 서겠다.” 그 말 앞에서 동생 한동진은 끝내 무너져 내립니다. 동생은 예수를 부인했고, 형을 외면했지만, 형은 끝까지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닮아 동생을 대신하여 자신을 내어주었습니다.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 형이 동생을 향해 남긴 마지막 한마디는 우리의 영혼을 눈물로 적셨습니다.
“동진아, 나는 너의 죄 옷을 입고 너 대신 죽는다.
너는 나의 의의 옷을 입고,
내 대신 나처럼 살아다오. 아버지! 준비됐습니다.
저 이제 갑니다.
동진아, 사랑한다.”
이 절규 섞인 고백은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단 하나의 당부와 맞닿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입어야 할 수치와 저주의 옷을 친히 입으시고, 대신 우리에게는 당신의 거룩한 생명의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나직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대신해 죽었으니, 이제 너는 내 안에서 나처럼 사랑하며 살아다오'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셨습니다"(요한일서
4:10).
형 한동민이 동생 한동진을 먼저 사랑했듯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의로운 자가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죽었듯이,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고백합니다.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주 보혈 흘려 주셨네 날 위해 주 십자가 지셨네" 우리가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해서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동생입니다."
"내가 너를 대신하겠다."
이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2026년 1월 16일 영화 '너를 위해' 시사회를 마치고, 김인철 담임목사님의 요청으로 작성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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