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누나가 부르던 가요들을, 중학교 때부터는 기타를 치며 팝송과 포크송을 즐겼습니다. 교회에서는 찬양팀과 성가대에 참여했고,
남성중창단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워낙 출중한 분들이 많아 제가 설 자리는 늘 빈자리가
생길 때 뿐이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깍두기’였던 것입니다. 찬양과 경배가 한국교회를 주 사역으로 시작될 때 교회에 세워진 익투스 찬양팀에서는 처음엔 드럼을, 나중엔 찬양 리더를 맡으며
곡 선정과 인도를 고민했던 20대를 보냈습니다. 사실 리더를 하기엔
목소리가 부족했는데, 그 때는 집사람이 반주를 하던 시기인지라 제가 가장 잘 맞아서 시킨것 같았습니다. 서울의 몇몇 대학 성악과
학생들과 함께했던 찬양선교단, 노래 선교단 시절에는, 집회에 나가 찬양인도를
할땐, 뒤에서 30여명의 성악가 학생들이 바쳐주는 웅장한 합창 속에서
찬양을 인도하며 하나님 나라의 풍요로움을 깊이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소리를 알기에 앞에서 인도할
때만 큰소리를 냈고 나머지는 뒤에서 찬양하는 분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행복했습니다. 미국 성악 전공자들로 구성된 카이로스 팀에서는 처음엔 고문으로 섬겼습니다. 음악하는 분들의 아픔을
알기에 그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려는 마음뿐이었는데, 큰 수술을 마치고 돌아오자 전공자가 아닌 저를 ‘깍두기’로
받아 주셨습니다. 정기 연주회를 지난 7월에 한 후에 여러군데에서 찬조요청이
카이로스에 오면서 제 얼굴이 나간 포스터를 보신 교우님이 포스터를 보내셨길래, 저는 “깍두기로 참가한 것뿐”이라고
했을 때, 제 진짜 목소리를 모르시는 교우는 그것을 겸손이라 하시며 긴 글을 남기셨습니다. 한국 놀이에서 ‘깍두기’는 짝이 맞지 않아 남은 아이, 혹은 실력이 부족하거나 장애로 참여하기 어려운 아이를 게임에
끼워주는 따뜻한 규칙입니다. 그래서 소외되지 않고 함께 어울릴 수 있게 해줍니다. 저는 그 정의가 참 좋습니다. 저의 역할도 그렇습니다. 앞에 서는 주연이 아니라, 옆에서 끼워준 깍두기인지라, 절대로 티나지 않게 제 역할은 깍두기다 다짐하며 연습에 나가는데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메인이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깍두기로 살아가면
실수해도, 부족해도, 누구도 크게 탓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꼭 중앙에 서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내 곁에 있으라,
떨어지지 말라” 하셨습니다. 깍두기라도 주님 곁에 붙어 있는 삶, 그것이 복된 삶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