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불렀던 동요 중에 ‘깊은 산속 옹달샘’이 있습니다. 가사에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요즘 제게 그 일이 일어납니다. 부엌에 약을 먹으러 갔다가 “왜 왔지?” 하며 물만 마시고 돌아옵니다. 어느 분께 여쭤보니 그럴 때는 처음 생각났던 자리로 돌아가면 다시 떠오른다 하셔서 방으로 들어왔더니 “아, 약 먹으러
갔었지…” 합니다. 집사람에게 웃으며 그런 일이 생긴다고 했더니 “다 잊어버려도 현진이 이름만 기억하면 되지” 격려인지 위로인지 모를 말을 해 주어 한참 웃었습니다. 사람 이름은 잘 잊지 않았고,
예전에 읽었던 글이나 사건도 연도별로 기억하는 편이었습니다. 교인들이 예전에 하셨던 말씀을 처음 하시는 것처럼 진지하게 말씀하시면
이해는 안되었지만 저도 처음 듣는 것처럼 진지하게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저걸 잊어버리셨지?” 요즘은 그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어르신들과 식사를 하다 보면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 남편은 꼭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소파에서 자요.” “혼자 있으니까 텔레비전이라도 켜놔야 안심이 돼.
그러다 잠이 들어.” 소리에 유난히 민감해서 아이들이 울면 늘 제가 먼저 깰 정도였던 저에게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한동안 불면증으로 3~4시간씩 뒤척이던 때, 한 장로님이
빗소리를 들으면 잠이 잘 온다며 유튜브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조용히 무엇인가를 틀어놓고 잠들기 시작했습니다.
도움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요즘은 3~4시간짜리
영상을 틀어놓고 잠을 청합니다. 잠이 오지 않으면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들고,
깨면 다시 다른 내용을 틀어놓고 잡니다. 한 번 자면 잘 깨지 않던 집사람이 가끔 그 소리에 깨기도 합니다. 이제야 조금 다른 분들을 알 것 같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굳이 이해시키려 애쓸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고 같은 시간을 지나게 되면,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아버지를 더 따뜻하게 대했을 텐데,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교인들을 더 깊이 이해했을 텐데. 늦게 배운 이해가 고맙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미안해지는 요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