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사역자로서의 숙명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해야 하는 고충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 말씀의대언자로서 말씀을 맡기신 주님의 뜻을 올바르게 선포해야 하는 일, 그래서 회중들로부터 때로는 오해를 받고, 때로는 미움을 받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이 말씀 사역자의 길입니다. 성경의 참된 예언자들, 선지자들, 사도들은 모두 이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좁은 길을 걸으셨습니다. 말씀 사역자의 길은 영광과 찬사의 넓은 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좁은 길입니다. 우리가 함께 읽고 있는 고린도전서의 사도 바울도 이 좁은 길을 걸어갑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갑니다. 자신이 개척한 교회인 고린도교회 교인들로부터 온갖 수모와 모욕을 당하지만, 사례비를 받지 않고 천막을 만드는 막노동을 하면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소명을 잃지 않습니다. 자신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 주셨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르신 그 소명에 충실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전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씀만 전하겠다고 결단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향해 권면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바울에게 기대했던 설교는 이런 내용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에 대한 무한 칭찬, 무한 격려였을것입니다. 자신들을 무조건적으로 용서하시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는 따뜻한 메세지를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메세지와 설교가 좋은 설교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합니다. 고린도교회의 상황을 잘 알고 계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선포합니다. 칭찬이 아니라 경고입니다. 긍정이 아니라 부정입니다. 따스함이아니라 날선 검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도 사랑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정의와 공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사랑은 정의와 공의 그 자체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악을 싫어하십니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원하는 하나님, 내가 바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을 바라는 것, 있는 그대로의 말씀을 듣는 것이야 말로 성숙한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이유식만 먹는 것이 아니라,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있는 것, 영적인 아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요 군사로 성장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