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언제나 기쁜 일입니다. 얼마 전 은퇴하신 장로님과 나눈 대화는 제 마음을 뜨겁게 하고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장로님은 젊은
시절 미국에 유학을 오셨고,
이곳에서 공부하던 자매님을 만나 결혼하셨다고 합니다. 그 자매님은 ‘2등’이란 말을 모를 만큼 늘 뛰어난 분이셨다고 합니다. 수재들만 간다는 경기여고에 수석입학하고
수석졸업하셨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은 어려웠습니다. 결국
전액 장학 혜택이 주어지는 적십자사 간호대학에 입학하셨고, 그곳에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인정받으셨습니다. 워낙 우수하셨던
덕분에 적십자사는 그분을 한국 간호학계를 이끌 리더로 키우고자 미국 유학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단, 조건은 유학을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와 후배 간호사들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장로님을 만나 결혼하시게 되었고, 그로 인해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셨습니다. 그 이후 권사님은 평생을 수술실 간호사로 섬기며 ‘백의의 천사’로 헌신하셨지만,
늘 마음속에는 자신에게 기회를 준 적십자사에 대한 ‘빚진 마음’을 품고 계셨습니다. 장로님 역시 그 마음을 함께 짊어지고 살아오셨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언젠가는 그
빚을 꼭 갚아야지.” 두 분은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합니다. 하지만 세월은 흘렀고, 권사님은 몇 해 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권사님이 떠나신
후,
장로님은 더 깊은 고민에 빠지셨습니다. 결국 한국으로 나가 적십자사를 직접 찾아가
권사님이 남기신 것 중 일부를 장학금으로 기증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적십자 간호대학은 이미
1984년에 폐교되어, 장학금을 받을 대상이 없다는 대답을 들으셨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장로님은 결단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금을 교회에 기증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사용하고, 교회에 필요한 곳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DH 기금입니다. DH는
장로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어머니와 돌아가신 권사님의 이름에서 따온 이니셜입니다. 서정운 총장님께서
쓰신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모두 이야기로 남는다.” 교우님들의 삶의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제 마음 한켠에도 깊이 남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가슴 아프고,
어떤 이야기는 숨기고 싶은 기억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야기는 가슴 찡합니다. 교인들의 인생을
돌아보면,
결국 아름답지 않은 인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픔도, 기쁨도, 후회도, 헌신도—그 모든 것이 하나의 이야기로
남아 우리를 기억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금도 누군가의 삶에 은혜의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이 기금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세워진 시무집사들과 목회자의 협력 속에, 투명하고 바르게 운영될 예정입니다.
단순한 기금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와 믿음, 사랑과 헌신이 담긴 ‘신앙의 유산’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